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가면 가나안 땅에서 가장 난공불락이라고 소문 난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속으로 좀 더 쉬운 길은 없었을까? 하며 왜 강이 막혀있는 어려운 길로 인도해 줬는지 속으로 생각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그 관리들을 통해서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한 것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는데 여호수아가 이것을 강조하였습니다.
Ⅰ.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으로 나아가면 축복을 만나게 된다.
▶절대 순종을 하면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순종은 축복이고 가나안 땅이지만 불순종은 고통이고, 방황이고, 광야입니다. 지금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원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종은 축복이요, 불순종은 고통이며, 순종은 가나안 땅이요, 불순종은 광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Ⅱ. “개인적인 성결”을 이루면 축복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성결을 이루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더러우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성결해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성결해야 합니다(2025.01.26.주일아침예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마치 큰 바다를 항해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인생의 풍랑이 우리에게 닥쳐오게 됩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됩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주님을 멀리 떠났던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풍랑을 만날 때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해서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73장 2절 가사를 보면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이러한 풍랑을 잘 우리가 믿음으로 통과하고 나면 잘 이겨 나가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두 손 들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그 절망의 자리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고통 가운데 처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우리를 그 절망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쓰러져 기도할 힘조차 없어서 입술만 떨리고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어루만져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절대 희망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세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여,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면 주님이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파도를, 풍랑을 잠잠케 하신 주님, 이 나라와 민족을 치유하실 것이며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2025.01.19.주일아침예배).
▶개역 성경은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1절)
▶쉬운 성경에서는 ‘씨앗을 물 위에 던져라. 수일 후에 그것을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절)
▶메시지 성경에서는 ‘너그럽게 베풀어라. 자선활동에 투자하여라’ 자선은 크게 남는 장사다‘(1절)
이 말씀은 성경 말씀 중에서 해석하기 힘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식물을 물 위로 던지면 반드시 도로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던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샬라흐(Shalach)라고 합니다. 이는 파종하는 의미에서 씨를 심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던져 버린다, 보낸다>라는 의미입니다. 낭비같이 보이는 말입니다. 도저히 거둘 가망성이 없는 단어입니다.
▶솔로몬은 애굽을 잘 알고 있었던 왕입니다. 나일강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이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위에 식물을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것이라고 원리를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없어지는 것 같지만 엄청난 소득을 생각했습니다.
▶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6절)
1. 복음을 물 위에 던지라
▶물 위에 식물을 던지는 것과 같이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시에는 효과적이지 못하고 성과가 없어 보이고 헛수고 같지만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복음 전도를 위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2. 기도를 던지라
우리가 기도하면 허공을 치는 것 같고,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도로 찾게 됩니다.
3. 선행을 던지라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을 도로 다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리라(잠 19;17)(2025.01.12.주일오후예배).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고착 상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의 유치한 습관이나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착 상태에 빠진 사람은 무조건 변화를 싫어하고 낡은 것에 매여서 거기서 안정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진화합니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나만 변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퇴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를 타고 넘으면서 거기서 창조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이렇듯 우리 신앙생활에도 심령을 새롭게 라고 외치는 이유도 영적 고착 상태로 있어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생생한 생명력 넘치는 영적 상태를 위하여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3-24)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격이 새로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활이 새로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물질로 달라지지 않고 환경으로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는 수없이 새롭게 되자고 외치지만 구조를 바꿔도 안 되고, 제도를 바꾸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가치관 곧 심령이 새롭게 바뀌기 전에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외적 문제로는 내적 문제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내적인 것은 내적으로, 영적인 것은 영으로만 가능합니다. 내적인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사회도 인간도 변하는 것입니다. 변화는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근본은 영적 문제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문제요 하나님과의 만남의 문제입니다(2025.01.05.주일아침예배).
▶요셉의 특징은 잘 되고 더 잘되는 삶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고, 여호와께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채색옷을 입고 귀하게 자랐지만 억울하게 다른 나라로 팔려 갔고, 그는 종살이 하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형통은 무엇이든지 잘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형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심에도 때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성공은 혼자 잘 먹고 사는 것이지만 형통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성공은 다른 사람을 밟고 누르고 찍어서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지만, 형통은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되는 인생입니다. 성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쟁취하려고 하지만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사람이 되듯, 우리도 그렇게 살면 잘될 것입니다. 더 잘될 것입니다(2025.01.01.영신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