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시대에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이단들이 날뛰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날뛰었습니다. 우상숭배 자들이 득세(得勢)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는 가짜들이 더 진짜처럼 보이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때에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가서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21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선택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입장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어디에 소속되어있는가를 밝히라고 도전했습니다.
▶우리가 머뭇거리지 않으려면,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내 삶은 없습니다. 선택 가운데서도 진리에 대한 선택이 중요합니다. 진리에 대한 선택이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분명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머뭇거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태도가 있다면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어떤 것에도 양보할 수 없고,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제1계명입니다.(2024.09.29.)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기 원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다 위로받고 살아야 할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고 소망을 얻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위로”라는 말의 뜻은 “수고를 치하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 줌. 괴로움, 슬픔을 어루만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정한 위로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에게는 사람을 위로할 언어와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반복되는 동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만큼 그 내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3절)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든지 제한이 없이 위로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어떠한 위로입니까? 본문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4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환난” 즉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라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은 능히 위로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힘들고 지쳐 피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어두움은 정신적, 영적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2024.09.22.)
▶전도서 12장 7절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흙(육신)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가 멀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하늘나라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 하나님이 비록 눈에 확연하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영혼에 풍성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고향을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입니다.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읍의 유지로서 비교적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은 자연재해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오미는 다행히 환란을 당한 후에 그동안 잊었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기억했습니다. 마침 고향 소식을 들었는데(6절), 그곳에 흉년이 그치고 풍년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늦게나마 그녀는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단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깨닫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습니다. 육신의 고향, 그리고 영혼의 고향입니다. (2024.09.15.주일 아침 추석 예배)
▶창조 이후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물은 100℃에 끓고 0℃ 이하에 얼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법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하고 토끼는 산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법칙을 떠나면 죽습니다. 인생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사는 것입니다.
▶(전 10:18-20)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계속해서 게으른 사람은 서까래가 내려앉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오늘 혹 좋은 집에 살고 있어도 반드시 서까래가 휘어지고 천장이 무너지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 10장 4절)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아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전 10:18)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손이 놓는다는 것은 태만한 것을 말합니다. 태만하면 집에 비가 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맛비에 여기저기에서 비가 새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오늘 부자라도, 오늘 성공했어도 태만하면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항상 처음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2024.09.08.)